| 개성공단에서 아침을… 남과 북의 새로운 시작 |
김일성 주석은 1991년 12월, 나진을 선택했다. 중국의 선전 경제특구를 벤치마킹하여 북한지역에 처음으로 경제특구 시대를 연 것이다. 그러나 외 자유치액은 목표액의 5%가 채 안 됐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2002년에 남한자본, 남한 기업가, 남한 관광객 등과 함께 북한지역에 2개의 경제특구를 만들었다. 중국을 바라본 신의주특구는 첫 술부터 꼬였지만 남북협력특구는 정말 잘 나갔다. 북한은 실질적인 경화(달러)를 쏠쏠히 공급받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폐쇄국가의 오명을 덜게 해 북한의 국제적 이미지 쇄신에도 도움이 됐다. 남쪽에서조차 통 큰 결정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했다.
2008년 여름, 갑자기 금강산특구에서 사건이 터졌다. 북한에서는 군 사기와 지도자 리더십에 관한 문제, 남한에서는 소중한 민간인 생명에 관한 문제 등이 개재돼 양 진영의 자존심과 여론의 질타는 금강산 사업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래서 금강산특구 사업은 접게 됐다. 산을 좋아하는 남쪽 관광객은 사진으로만 금강산을 바라봐야 했던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다
시 ‘그리운 금강산’이 됐다.
개성공단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었다.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시계를 제조하는 입주기업은 시계부품을 깎을 때 필요한 선반(밀링)을 개성공단에 반입하기 어려웠다. 공작기계를 제어하는 486급 컴퓨터가 북한의 정밀무기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 측의 우려(전략물자 반출 규정)가 커서였다.
미국의 걱정처럼 북한의 무기는 정말로 개성공단 운영을 위협했다. 북한이 2006년도에 1차 핵실험을 하자, 우리나라에서 개성공단 중단을 하지 말라는 여론이 각계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정부는 정상가동을 선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인고(忍苦)도 모르는 채 2차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3차 핵실험, 4차 핵실험 등 꾸준히 남북관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이어 나갔다. 그럴 때마다 개성공단은 남북 양측에서 ‘북핵의 지렛대’가 되어 최소인원 체류, 잠정 중단, 재가동 등을 반복케 하다가 2016년 2월, 드디어 전면 중단(폐쇄)에 처해지는 운명을 맞았다.
그동안 북의 도발상황을 보면 진작 중단되었을 텐데 그래도 오래 버티었다. 전면 중단된 사유는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이 북한 핵개발 실험과 대륙간 탄도탄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확신한 당시 대통령의 판단 때문이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절대 용서할 수도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중단사유가 좀 옹색하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임금을 모으면 정말 핵 개발을 할 수 있고, 태평양을 넘나드는 이름도 엄청난 대륙간 탄도탄을 제작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의 나로호는 개성공단 임금 정도도 투입되지 않아서 몇 차례나 실패했는가. 대통령의 가설이 성립하려면, 2006년에 첫 핵실험이 있었으니 개성공단 노동자가 십시일반(十匙一飯) 임금을 절약해 10년 이상을 그 돈으로 비밀스럽게 핵폭탄과 미사일 부품을 만들어 나가는 동안 국정원, 통일부, 미국의 중앙정보부 등은 모두 깜깜이 정보기관들로 직무유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답을 정하고 사유를 찾으려 해서 생긴 옹색함이다. 즉 북한의 핵 개발 문제에 대해 원인과 압박수단을 개성공단에서만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만일 전면 중단의 논리가 맞는다면, 이제 개성공단이 중단됐으니 북한은 십시일반할 자금이 없어 핵개발과 미사일 생산을 하지 못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북한의 핵실험은 계속되고 이제는 물속에서 쏘아 올리는 초현대식 미사일(잠수함탄도미사일)까지 선보이고 있다. 왜 개성공단만이 북핵문제를 책임져야 하는지, 개성공단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성공단의 진면목은 어디에 있는가. 남한에서 125개 사가 입주할 소규모 산업단지는 그야말로 널려 있다. 125개 사가 점유한 면적은 우리나라 산업입지 총면적에서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면적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북한근로자에게 실직이라는 용어가 해당되는지 모르지만) 실직 노동자 54,988명은 우리처럼 실업률 통계를 의식치 않은 북한 당국으로서는 눈도 꿈적하지 않을 수준이다. 남쪽에서 보면 실직 상황이지만 북쪽에서는 인력재배치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남과 북에서 개성공단만큼 내실 있는 알짜배기도 없다. 우리나라를 떠나 국제적으로도 개성공단은 21세기의 산업단지 히트작이다. 산업단지 시상식이나 아이디어 공모상이 있다면 대상감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1970년의 마산자유무역지역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성공한 산업단지이다. 개성공단 입주 당시 입주경쟁률인 60 대 1, 개성공단 첫 생산품인 통일냄비가 세계 명품들도 매장을 잡기 어렵다는 유명 백화점에서 하루 만에 완판된 일, 산업단지 또는 공단 중에 매스컴에 오른 홍보 빈도수와 관심도 등에서 기존 산업단지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성과가 혁혁하다.
대외적으로도 해외 생산지에 대한 입지 대안으로서 우리기업에게 선택권을 넓히게 하는 고마운 입지이다. 임금수준이 나날이 오르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 등 현지 생산지로부터 본국회귀(리쇼어링)를 결정한 기업들에게 안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대상 업종의 미래 확장성도 높다. 비록 지금은 중소기업형 업종, 즉 섬유, 가죽제품, 전기부품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서울로부터 60km 떨어진 수도권 지역의 대규모 공간은 어떤 산업의 입지조건으로도 매력적이다. 미래 4차 산업시대에서도 삼성동 테헤란 밸리, 여의도 금융센터 등과 연계해 생산 테스트베드 및 지원서비스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우량입지이다. 산업단지의 리모델링은 수시로 일어난다. 과거의 구로공단이 현재의 구로디지털단지가 된 것처럼, 또 삼성전자의 수원사업장처럼 향후에 삼성전자 개성사업장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한에서 개성공단 평가는 순수 산업입지 측면만 봐서도 독립적 경제성을 지닌 최고 투자프로젝트이다.
북한에서 남북협력 경제특구의 성과는 남한에서 보다 훨씬 혁혁하다. 개성공단은 금강산특구와 더불어 유일한 북한 경제특구 성공사례이다. 미래 북한의 특구전략을 조언하는 입장에서 볼 때 모범사례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북한은 진행 중인 다른 경제특구들,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경제특구들도 유일하게 성공한 이들 특구의 추진방식을 따라야 한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특구이자 남한의 특구이다. 법적으로는 북한 지역에 있는 북한 당국 관리에 있는 특구이지만 기반시설 건설의 투자주체나 생산
활동을 하는 입주기업은 남한의 경제인들이다. 북한특구의 성공 자체가 남한의 성공인 것은 개성공단이 가진 이 같은 독특한 속성에 기인한다.
기업가뿐 아니라 남과 북의 근로자 개인에게도 개성공단 중단은 너무 큰 피해를 입혔다. 그들의 일상을 없앤 것이다. 직장에 출근하고, 동료들과 어울리고,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등등 많은 일들이 개성공단 가동으로부터 시작됐고 영위됐다. 남한에서 한때 종로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기 위해 줄지어 통근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광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 북한 근로자들이 개성시내에서 공단까지 출퇴근용으로 운행했던 통근버스들은 이미 공단 내 방치됐다.
서버린 통근버스처럼, 방치된 통근버스처럼 남과 북 근로자의 삶도 서버리고 버려져서는 안 된다. 불러내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개성공단에서 아침을..., 개성공단에서 하루를 시작하자. 남과 북의 근로자, 우리 한반도 사람들의 염원이다.
ㅣ 차 례 ㅣ
1 장 . 한반도 경제특구의 서막
1.한반도 경제특구는 어디에 있는가?
2.한반도 경제특구란 무엇인가?
3.남과 북의 경제특구는 어떻게 시작됐나?
4.한반도의 나북협력 경제특구는 왜 필요한가?
5.남북협력 경제특구의 전략적 의미는?
6.남북협력 경제특구가 부활해야 하는 이유는?
2 장 . 남한 경제특구의 현주소와 과제
1.남한 경제특구 출범의 배경은?
2.인천경제자유구역의 진해상황은?
3.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진행상황은?
4.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의 진행상황은?
5.그 밖의 경제자유구역의 진행상황은?
6.경제자유구역의 평가와 과제는?
3 장 . 북한 경제특구의 현주소와 과제
1.북한 경제특구 출범의 배경은?
2.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의 진행상황은?
3.신의주국제경제지대(신의주특별행정구역)의 진행상황은?
4.개성공업지구의 진행상황은?
5.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구(금강산관광지구)의 진행상황은?
6.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의 진행상황은?
7.북한 경제구의 평가와 과제는?
4 장 . 성공적인 한반도 경제특구 개발전략
1.북한의 남북협력 경제특구 개발효과는?
2.남한의 남북협력 경제특구 개발효과는?
3.한반도 남북협력 경제특구 개발효과는?
4.남북협력 경제특구 성과의 의미는?
5.중국 경제특구가 남북협력 경제특구 개발전략에 주는 시사점은?
6.성공을 위한 북한 경제특구의 개발방향은?
5 장 . 남북 경제특구의 국제제휴와 재정조달
1.한반도의 소지역경제협력구는 가능한가?
2.나선.훈춘의 소지역경제협력구 가능성은?
3.인천경제자유구역의 국제제휴전략은?
4.한반도 경제특구 재정조달 방안은?
5.남북협력 경제특구의 비즈니스 개발방안은?
6 장 . 한반도 경제특구 추진에 대한 제언
1.남한 경제특구 개발에 바라는 점은?
2.북한 경제특구 개발에 바라는 점은?
임 성 훈 은 현재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교유로 재직 중이며 한양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경영학 석사 /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동북아시대위원회, 국민경제자문회의 등 대통령직속기관에서 수석전문위원으로 외국인투자유치위원회, 경제자유구역특별위원회의 간사(전문위원)를 맡았으며 최근에는 경제자유구역관련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인 경제자유구역위원회의 민간위촉위원을 역임하였다. 학술활동으로는 다국적기업의 경영전략, 외국인투자정책 등에 대한 전문서적을 국내 . 외에서 출판하였으며, 국제 SSCI 저널 및 국내 저명학술지에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이들 저널의 편집위원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중이다.